디자인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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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젼 0.2, 2012년 7월 24일

요즘 디자인이라는 단어를 어디서나 눈에 띈다. 거의 모든 나라, 혹은 도시들도 소위 ‘디자인 사업’을 시행하거나 그와 관련된 기관을 운영하고 있고, 2011년 현재 그 어느때보다 많은 디자인 어워드, 디자인 페스티벌, 디자인 페어가 존재한다. 심지어 2008년부터는 토리노에서 시작한 세계디자인수도라는 세계적인 사업이 생겼고, 공교롭게도 2010년엔 내가 태어나 살았던 서울이, 내년인 2012년엔 지금 내가 사는 헬싱키가 선정되었다. 이 정도면 세계가 디자인 병에 걸렸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용어를 사용할 때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는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은데, 이는 물론 누구나 인정하는 일원화된 디자인의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 명사로서의 디자인만 살펴봐도 제품의 형태나 색, 그래픽 인터페이스, 기계류의 조작부, 건축 조감도, 엔지니어링 도면, 컴퓨터 프로그램의 코드, 전자회로 설계도, 바느질 패턴 등 그 적용 대상이 다양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혹은 원래 디자인이라는 말이 그렇게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용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동굴벽화와 빗살무늬 토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는 디자인을 이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다. 하지만 디자인의 의미가 가장 크게 변화한 시기는 역시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일어나 유럽으로, 세계로 퍼져나간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 시기 세계는 증기기관, 공장, 산업도시, 공교육 등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했다. 이 시기 처음으로 가능해진 대량생산은 우리가 기존에도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상상하지 못했던 속도와 물량으로 제조할 수 있게 만들었고 이는 당시의 기술적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다양한 물건을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도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새로운 직업군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그들이 당시에 디자이너라고 불리웠던 그렇지 않았던, 디자이너들은 애초부터 적어도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기술적 현실화 가능성feasibility, 경제적 실현 가능성viability, 그리고 매력desirability1. 아무리 아름다운 텍스타일 패턴이라도 그것이 당시 방직기로 짤 수 없거나, 짤 수 있더라도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 어떤 소비자도 구매할 수 없는 가격이 된다면 무용지물이였고, 아무리 싼 물건이라도 너무 질이 형편없거나 흉하다면 시장에서 실패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Engraving of the 1774 steam engine designed by Boulton and Watt.

20세기 초 디자인은 새로운 문제를 마주한다. 이제까지 인류가 알지 못했던 제품들, TV, 라디오, 토스터, 세탁기, 청소기 등이 흥미롭게, 가지고 싶게, 안전하게, 저렴하게, 쉽게, 그리고 누구나 쓸 수 있게 생산되어야 했다. 그 후 세계대전 전후로 급속도로 늘어난 기계들은 디자인이 인체공학 역시 끌어안게 했으며 이는 자연히 이후 등장한 화이트칼라의 사무공간과 주방의 크고 작은 문제를 푸는데 적용된다. 40년대 부터는 소비자에게 너무 많아진 선택과 평준화 되어가는 제품의 질 때문에 선진 기업들이 브랜드가치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60년대부터는 몇몇 선진국들이 자국의 산업과 관광을 지원하기 위해 소위 국가브랜드를 다듬고 홍보하기 시작한다.

1891년 자신의 ‘고주파와 잠재력’ 강의에서 무선 송신 시범을 보이는 니콜라 테슬라 (1856 – 1943). 그 후 계속된 연구의 결과로 1893년 현대 라디오 기술의 기초를 선보였다.

짧게 말하자면, 우리가 ‘디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그 뜻이 모호한 이유는,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예술과 공예로부터 분리된 디자인이 이후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서 늘 새로이 대두되는 문제에 창의적이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디자인 외의 다양한 분야를 꾸준히 탐구해 왔기 때문이다. 이제 디자인에서 당연시되는 모양이나 색을 제거해보자. 남은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창의적인 열정과 쉼없는 노력이다. 산업혁명 초기부터 지금까지 디자인은 접시, 직물, 휴대폰 커버 위 색과 패턴에 개성을 부여하는 것이었고, 우리가 매일 앉고, 통화하고, 켜고 끄고, 세탁을 하고, 듣는 물건에 개성, 모양, 편의성, 안정성을 부여하는 것이었고, 브랜드와 도시 그리고 국가의 고유색을 부여하고 다듬고 드러내는 것이었고, 그리고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그 시스템을 이루는 부분들이 서로 작동하는 방식에 고유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디자인은, 시각적 요소를 다루던 그렇지 않던, 창의적인 문제해결분야이다.

오늘날, 경험디자인, 서비스디자인, 전략 디자인을 필두로 디자인은 그 어느때보다 융합적이며 거대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운영 체제, 거대한 기간 시스템, 그리고 수익 구조를 최대한 활용하면서도 기기간 끊김없이 부드러운 사용자 경험을 가진 휴대폰을 디자인하거나, 공공 수영장의 방문률을 제고하거나, 소외계층의 공식경제 진출을 디자인하거나, 혹은 거대한 문제의 구조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일의 방식을 디자인하는 것은 시스템적systemic이고, 전반적holistic이며, 근본적으로 더 복합적complex이다.

1. Brown, T. (2009) Change by Design, How Design Thinking Transforms Organizations and Inspires Innovation, New York: Harper Business.

One Response

  1. 이종하
    | Reply

    디자인이라는 용어가 포괄적으로 — 시스템적, 구조적, 조직적 — 복합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군요. 다양성 용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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